예전에는 정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을 마치는 나이’를 떠올렸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연금과 모아둔 자산으로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생 순서처럼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퇴직한 뒤 다시 취업하는 사람도 있고,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택배나 운송, 시설관리, 대리운전 같은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온라인 판매나 프리랜서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정년 이후에도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진 걸까요.

가장 먼저 봐야 할 숫자는 ‘정년’ 자체가 아니라 실제로 주된 일자리에서 나오는 나이입니다.

실제 주된 일자리 퇴직은 생각보다 빠릅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64세 취업 경험자가 가장 오래 근무했던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은 52.9세였습니다.

반면 55~79세 가운데 앞으로도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69.4%였고, 그들이 희망하는 평균 근로연령은 73.4세였습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두 나이 사이에는 약 20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퇴’라는 말과 실제 삶 사이에 상당히 긴 시간이 생긴 것입니다.

회사를 53세 전후에 떠난다고 해서 53세부터 소득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주택대출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자녀가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과 배우자의 생활비와 의료비도 계속 필요합니다.

더구나 오래 사는 시대가 됐습니다.

2025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2023년 기준 평균 21.5년이었습니다. 65세가 되어도 평균적으로 20년이 넘는 삶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퇴직 뒤의 시간이 더 이상 짧은 ‘노후’만은 아닌 이유입니다.

연금이 있어도 일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79세 가운데 지난 1년간 연금을 받은 사람은 51.7%였고, 이들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86만원이었습니다. 조사 대상과 연금 범위가 다른 2025 고령자 통계에서도 65세 이상 연금 수급률은 높지만 월평균 수급액은 생활비 전체를 대신하기에는 제한적인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사람마다 상황은 크게 다릅니다.

국민연금이 충분한 사람도 있고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금융자산을 함께 갖춘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국민연금만으로 생활비를 해결하기 어려운 가구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금을 받는다’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가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후가 20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면 월 생활비의 작은 차이도 장기간 누적됩니다.

그래서 퇴직 이후의 노동은 과거처럼 단순히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산을 너무 빨리 소진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예전 직장에서 계속 일하는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년 이후 노동을 이야기하면 흔히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릴 것인가 같은 논쟁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개인의 선택지는 그것보다 다양합니다.

현재 회사가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회사에 다시 취업할 수도 있습니다. 근무시간을 줄여 일할 수도 있고, 개인사업이나 플랫폼 일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계속고용과 재취업 정책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정년 연장·폐지 또는 정년 이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기업을 지원하는 계속고용장려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동시에 중장년 특화훈련과 일경험, 재취업 지원도 확대하는 방향을 내놓았습니다.

이 정책이 의미하는 것도 결국 하나입니다.

주된 직장에서 나온 이후에도 일을 이어가는 기간이 하나의 별도 인생 단계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일은 첫 번째 일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50대 초반까지 회사에 다닐 때는 연봉과 승진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다른 기준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 조사에서 장래 일자리 선택 시 ‘일의 양과 시간대’를 중요하게 보는 비중이 높게 나타난 것도 이런 변화를 보여줍니다.

몸이 버틸 수 있는지, 집에서 얼마나 먼지, 야간근무가 있는지, 매일 출근해야 하는지, 일정 수준의 소득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 350만원이지만 매일 장거리 출퇴근과 야간근무가 필요한 일보다 월 250만원이면서 집에서 가깝고 일정한 시간에 끝나는 일을 더 선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직 체력과 운전 경험이 충분하고 더 높은 소득을 원한다면 화물운송이나 개인사업처럼 변동성이 있지만 수입 상단이 높은 일을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50대 이후의 일은 ‘좋은 직업 순위’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자금, 경험, 건강, 근무시간, 가족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래 일한다는 것은 같은 일을 오래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73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한 회사에서 73세까지 똑같은 일을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인생에서 일을 여러 번 바꾸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50대에는 기존 경력을 활용한 재취업을 하고, 60대에는 근무시간을 줄인 일을 선택하고, 이후에는 소규모 개인서비스나 간헐적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6년 노동이동 연구는 일자리 이동의 ‘질’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실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임금 측면에서 불리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직업훈련은 장기적인 임금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퇴직 후 처음 하는 선택이 중요합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 일이나 선택했다가 몇 달 만에 다시 그만두는 것보다, 앞으로 몇 년을 이어갈 수 있는 일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은퇴 준비에는 ‘다음 일’도 포함돼야 합니다

예전의 은퇴 준비는 주로 돈을 얼마나 모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합니다.

“주된 직장을 그만둔 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소득을 만들 것인가.”

완전한 재취업일 수도 있고, 주 3~4일 근무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개인사업일 수도 있고 운송·생활서비스 같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퇴직 후 처음부터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경험과 자금, 체력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소득 구조를 찾는 것입니다.

정년 이후 다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된 직장에서 나오는 시기는 빠른데 삶은 길어졌고, 그 사이를 채울 새로운 노동기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는 취미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앞으로 10년, 20년의 생활을 결정하는 두 번째 직업 선택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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